지난번 일산 암장에 갔다가 수직벽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무릎, 팔 부상을 입은 후로 클라이밍에 대한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날 많이 속상하고 아프고 화가 났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를 다치게 하는 게 슬펐다. 그리고 벌써 두 번째 큰 부상이라 회복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쉬어야 하는 것도 화가 났다. 무릎이 붓고 멍이 진하게 들고 팔은 화상 상처로 씻기도 힘들었었다. 그래서 그 이후 암벽이 전보다 무섭게 느껴졌고, 스스로 내 실력을 믿을 수 없었다. 크게 안 다쳐봤을 땐 몰랐는데 위험성을 알고 나니 겁이 늘었다. 그럼에도.. 그만둘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삶의 많은 부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취미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안 다치고 오래 즐기면서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주변 고수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결론은, 초심으로 돌아가서 기초부터 다시 다지라는 것. 높은 레벨의 문제를 풀려고 욕심내지 않고, 한 단계 낮은 레벨의 문제들을 주욱 풀면서 지구력을 키우고 자세를 정확히 하는 연습을 하라는 것. 역시 모든 것은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성장하는 지름길을 찾으려 하지 말고 기초를 단단하게 다져놔야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초심자로 돌아왔다. 오늘 오랜만에 암장에 갔다. 이전에 풀던 것보다 낮은 레벨의 문제들만 쭉 풀었다. 대부분 첫 시도에 풀렸고, 솔직히 엄청 재미있진 않았다. 어느 정도 어려운 문제를 완등할 때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데..! 비교적 쉬운 문제들만 푸니까 이전에 느꼈던 짜릿한 성취감이 들지 않았다. 아쉬웠다. 그 짜릿함이 내가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였는데.

그래도 지금은 이 방법이 최선이다. 여기저기 자꾸 다쳐가면서는 클라이밍을 지속할 수가 없다. 다치면 그동안 운동을 하지 못할뿐더러 일상에도 지장이 생겨서 회복할 때까지 힘이 든다. 다시 기초부터 차근차근, 홀드에 힘주어 발을 딛고 안정감 있게 다음 홀드로 넘어갈 수 있도록 자세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 안정감이 몸에 익도록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근력운동을 따로 병행해야겠다. 상체와 코어 힘이 부족해서 팔로만 버티거나 하체의 반동을 이겨내야 하는 동작, 밸런스가 중요한 동작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일을 쉬는 동안 튼튼하고 건강한 몸을 만들 테다. 체력이 곧 정신력을 강화해 주고 강화된 정신력이 다시 체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덜 지치고 더 많이 할 수 있겠지! [퇴사 후 가장 중요하게 지킬 일상 루틴: 운동]이라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