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 날의 햇빛과 바람이 생각날 정도로 날씨가 정말 좋았던 지난 주 목요일. 다다님이 미리 점찍어둔 공간, 들어가는 골목부터 재미있었다. 층층이 계단을 딛고 올라간 옥상 풍경도 참 예뻤고- 조금 늦게 도착한 다다님을 실제로 보고, 이 차분하고 멋진 공간이 그를 많이 닮았구나 생각했다. 처음 만나 조금 어색 뚝딱 하면서도, 스스로 말투는 건조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라며 속마음을 외치는 그를 보며, 앞으로도 여러 번 그녀가 별찍어둔 공간에 초대받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재미있고 따뜻한 새럼,,,

근 10년 만에 보게 된 연극, 한 번에 못 욀 정도로 긴 이름을 자랑하던 그 연극의 끝에 우리 셋은 제목은 몰라도 ‘이지형’이라는 이름은 머릿속에 똑똑히 각인시키고 나왔다.(앗 혹시 이것까지 작가의 의도?) 뭐 사실 제목이야 어떻든 간에, 극의 내용은 전부 이지형에 관한 이야기였으므로 제목은 몰라도 이지형은 기억하는 이러한 감상이 극의 목적과 부합하리라… 퉁쳐본다.

인생 처음 자신을 ‘인형 작업자’라 칭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가 직접 만든 인형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무대와 연출은 낯설고 새로웠다. 20대의 이지형과 40대의 이지형, 70대의 이지형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명연기까지도, 관절 마디가 딱 맞아야 제대로 설 수 있는 인형처럼 구조와 구성적으로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던 연극. 극의 사이 사이를 구부러지고 펴지는 ‘관절’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었다.

매분 매초가 흥미로운 감각의 연속이었으므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만 떠올려보자면 단연 ‘한예종’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예종, 내 친척 오빠가 배우의 꿈을 키우러 떠났던, 많은 배우와 연예계 인사들의 등용문이자 20대 인형 작업자 이지형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그곳. 이지형에게 그곳이 아니면 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간절했던 꿈, ‘한예종’에 대한 이야기들.

이지형이 모든 청춘을 쏟아 부어서라도 갖고 싶었던, 시공간이 뒤틀려 미래의 나를 만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질문이 ‘나 한예종 붙었어?’일 정도로 간절했던 그런 꿈이, 나에게도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언젠가 있었던 것 같기도, 있었다 하더라도 이지형처럼 붙들고 늘어질 용기도 없어 포기한 지도 모른 채 포기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내 인생에 있어서 이지형의 한예종 같은 꿈은 없었으면 한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간택받아야 이어지는 삶을 원치 않는다.

인간사를 초월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람들과 똑같이 밥 먹고, 돈 벌고, 똥 싸고, 잠 자야 하는 예술가들의 현실은 나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사회가 정해놓은 틀을 깨부시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 발버둥치는 내가 사람들과 똑같이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 사이에서, 나는 나를 온전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까?

크… 횡설수설 중인데 벌써 20분이 지났다.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고.

아 글을 끝마치기 전에, 이 모임의 호스트 이슬에 대한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자. 내게 연극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을 활짝 열어준 이슬님! 그는 신기하다. 언젠가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어느새 내 방 이곳저곳에 자신의 색을 남겨두고 있다. 창 없이 깜깜했던 빈 벽에 유리를 덧대고, 조명을 세워두고, 이것 좀 보라고- 여기도 참 예쁘고 멋지지 않냐고 사는 데만 바빴던 나를 자꾸 붙들어 둔다. 그는 뭘까, 나는 계속 그녀가 놓아두고 간 것들을 여러 번 쳐다보고 만져본다. 이 새로운 인연을 모두 이해하려면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이 또 기쁘고..

그나저나 퇴고까지 40분을 써버렸네… 20분.. 대..실패..